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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 시 - 박시하 X 마리나 교차 낭독극 ___________.

 

박시하 x 마리나 츠베타예바 교차 낭독극

 

해체하는 목소리, 부유하는 시

 

 

 

 

 

 

 

1막. 우리는 초고에서 

 

 

 

 

 

[리외] 왼쪽 끝 의자에 앉아 있다.

[안나] 반대편 의자에 서 있다. 

 

무대 열 다섯 석이 다섯 석, 세 줄로 중앙에 동그랗게 모여 있으며 가운데 텅 빈 공간이 있다. 

 

오프닝 음악,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 6번 <비창> 

 

 

 

 

낭독자, 최리외

 

 

 

[리외] 그는 카드를 섞어

무게와 계산을 속이는 자

그는 책상에 앉아 질문하는 자,

칸트를 격파하는 자,

 

바스티유의 석관에서

나무처럼 아름다워지는 자.

흔적이 - (잠깐 암막), 언제나 차게 식는 자.

모두가 늦어 타지 못하는

기차

 

 

 

낭독자, 안나 

 

 

 

 

[안나] А дальше, зажелезнойдорогой, A dal'she, zazheleznoydorogoy

          Темнеетзелёноеморе. Temneyetzelonoyemore.

 

    Прикасаюськтебе Prikasayus'ktebe

     И глотаю тревогу. I glotayu trevogu.

 

          Картинарастворяется Kartinarastvoryayetsya

      Внаступающихсумерках   Vnastupayushchikhsumerkakh

 

            Незнаю,      Neznayu,

                сказатьлимне,    skazat'limne,

 

 

 

 

 

 

 

 

 

[리외], [안나] (함께)

있거나 없다

Ни вчём не уверена

 

 

 

 

 

 

([리외], 『구토』 소리나게 펼치며 아무곳이나 펼쳐들고 일어나 걸으며) 

사르트르, 그 책에 당신이 살아 있어요

끊임없이 구역질을 느끼며 ...

(안나, 리외가 말하는 동안 그를 올려다본다) 

 

 (리외, 책을 소리나게 덮는다)

 

[리외] (빠르고 신경질적으로)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먼 시간 너머, 시간이 공간인 우주의 공허 너머, 어딘가에 장밋빛 집이 있고 거기에서 헤세와 당신(쾅), 불쌍한 로캉탱(쾅), 보부아르와 내가!(천둥 소리)

 

(리외, 잠깐 쉬고)

 

지워지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Хиросима – любовь моя (히로시마 내 사랑) 

 

 

Я не в Хиросиме. YA ne v Khirosime.

И я не вы. I ya ne vy.

Но я люблю вас. No ya lyublyu vas.

 

Война окончена. Voyna okonchena.

Остались только мёртвая плоть и обгоревшие кости. Ostalis' tol'ko mortvaya plot' i obgorevshiye kosti.

Это то, из чего состоит  наша любовь. Eto to, iz chego sostoit  nasha lyubov'.

Ты мой тигр, Ty moy tigr,

А я сердце растерзанного тобой оленя. A ya serdtse rasterzannogo toboy olenya.

 

Самую яркукю вспышку Samuyu yarkukyu vspyshku

Вижу в небе,

Слышу самый страшный  грохот,

Из трещин на дороге течёт вода... Iz treshchin na doroge techot voda...

 

Я не в Хиросиме, YA ne v Khirosime,

Но я вижу её развалины.

Жизнь и смерть слились в едином звуке.

Это возвращается ко мне очередным кошмаром.

Мы как лунатики, очутившиеся ночью в незнакомом переулке, 

Смотрим в горящее небо.

Вот такой у нас разговор:

– Что осталось на земле? – Chto ostalos' na zemle?

– Наверное хоть что-то осталось.

Порыв ветра Poryv vetra

Поднимает лежащую на земле смерть, Podnimayet lezhashchuyu na zemle smert',

Огненный гриб

Поднимается в ночном небе.

 

Я делаю шаг навстречу тебе,

К моей любви, не имеющей лица.

Вместо твоего лица пустота.

 

 

 

 

 

 

[리외] 덮개의 마지막 한 올까지 뜯어낸 이들에게

[안나] Ябросиланадежду стать лучше 

[리외] 오, 하데스에게 내려가는 오르페우스는 분수를 모르는 것 아닐지? 

[안나] На любуюмораль можно махнуть рукой. 

[리외] 넌 아무것도 못해! 나도 끌려가지 않을 거야!

손이없거든! 넘어진 척 입술을 덮치려 해도 입술이

 

(리외, 잠깐 쉬고) 

 

없거든! 여자의 정열이란 뱀에 물리면

[안나] Яумеювзглянутьнамирподдругимуглом,  Yaumeyuvzglyanut'namirpoddrugimuglom,

 Но чувствамоиостанутся прежними. No chuvstvamoiostanutsya prezhnimi.

[리외] 불멸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끝나니까

[안나] Моя мораль 

[리외] 값을 치렀으니

[안나] Она именнотакая. Но я просила. Ona imennotakaya. No ya prosila

Океаны, небо, луну и облака, Okeany, nebo, lunu i oblaka,

Просила тысячи раз. Prosila tysyachi raz.

[리외] 망각의 평온 ... 이 망령의

집에서– 살아 있는 네가 허깨비고 죽은 -

나는 살아 있으니까... 네게 할 말이 없어

 

 

[리외], [안나] 나를 잊고 떠나! Забудь про меня и уйди! 

 

 

 

 


 

 

 

2막. 우리는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https://youtu.be/4XVZwt_0q1E

 

 

 

 

 


 

 

 

 

3막, 우리는 읽히는 모든 곳에서 

 

 

 

 낭독자의 글 

- 무용함에 무용함을 겹치며

 

 

스스로를 낭독자로 소개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낭독은 내게 있어, 그리고 타인들에게도 무용한 행위로 비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소리 내어 읽고 내가 듣는 일, 내 목소리가 어디로도 뻗어가지 않고 그저 내 귓가에만 머무는 일. 독서를 처음 시작했던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낭독을 해왔으며, 누군가에게라도 발신하고자 녹음 파일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기 시작했으며, 그럼에도 그 모든 시절 내내 ‘낭독자’라고 불리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어떤 문학은 무용하다. 시는 무용하다. - 유용한 시, 유용한 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도덕관념, 이 세계의 윤리 의식과 연동되거나 어떠한 의미에서든 세계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성격을 지닐 테다. 그게 아니라면 문학은 어떻게 유용할 수 있는가? - 모든 일의 쓸모가 수월하게 값으로 치환되는 세계에서는 더욱 무용하다. 낭독 역시 무용하다. 그러므로 소리 내어 시를 읽는 행위는? 무용하다. 심지어 목소리에 목소리를 겹침으로써, 익숙하다고 여겨 온 모국어와 낯섦을 직감하는 외국어를 겹침으로써 발화자와 청자의 의미 작용을 막아서는 말하기라면, 역시 무용하다. 무용함에 무용함이 겹쳐지며 결국 무(無)가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기는 관습의 언어란 얼마나 협소한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논리와 합리의 문장은 독자를 멀리까지, 인식의 저편까지 데려다놓을 수 있는가? 의미화되기를 거부하는 언어란 혹시, 결국 언어가 되지 못한 무수한 존재들의 양태와 닮아있는 것은 아닌가? 언어가 끝없는 투쟁의 장이라고 할 때, 나의 언어를 얻기 위해 기존의 언어를 해체하여 틈새에서 발화하는 행위는 전복적일 수 있는가? 그것이 내가 독방에서 내 목소리를 들려주며 어렴풋이 지녀왔던 질문들이다. 그 질문들을 이제야 꺼낸다. 발신한다. 

 

묵독 이전에 낭독이 있었다. 쓰기 이전에 말하기가 있었듯이. 규정되고 부합하고 이해되고 판단되기 용이한 언어를 탈출해보자는 마음으로 ‘시대의 사랑’을 만드는 이유운 작가의 낭독극 제안을 곧장 받아들였다. 박시하 시인의 시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언어와 언어 사이 틈새를 벌리고,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를 낯선 목소리가 되어 읽으면서 나는 협소한 나를 잠시나마 탈출한다. 그 찰나의 해방감을, 나를 해체하여 잠시간 타자가 되어본다는 감각을 위해 나는 이제 기꺼이 낭독자가 된다. 비정형의 언어가 공중을 부유하고, 뜻을 감지할 수 없는 목소리들이 불길한 징조처럼 들려올 때, 당신 역시 발 딛고 선 세계를, 현실이라 불리는 모든 감각을 잠시 잃을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연출과 기획자의 글 

― 눈과 사랑이 내리는 풍경의 한가운데서 

 

 

 

싸락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 아이의 종아리가 얇은 슬레이트 지붕에 부딪히는 것 같은, 연약하고 조용한 소리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떤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겨울에만 가능한 사랑의 풍경이다. 짧은 코트를 입고 있는 자의 손에 내가 뺨을 대고 있다. 그는 내 뺨의 모양과 깊이를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얼마나 손을 동글게 모아야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내 뺨이 그의 손에 묻히는지를 알고 있다. 속삭인다. 나 밖에 오래 서 있어서 손이 차가워. 눈이 내리는 소리처럼 가볍고 조용하다. 그 소리가 내 귓등에 소복하게 쌓인다. 응, 내 얼굴은 따뜻해. 그의 손에 뺨을 오래도록 파묻는다. 머리카락 위로 축복의 흔적처럼 눈이 쌓이고 나서야 오목한 손과 볼록한 뺨이 떨어진다. 눈이 깊이 쌓인다. 점점 조용해지는 도시에 내리는 눈만이 사랑의 소리를 알고 있다.

 

눈이 내리는 소리가 시를 읽는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느리고 조용하게 흩어지고 모두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시를 읽는 순간 모두들 눈이 내리는 조용하고 어두운,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서 있다. 그 중에 누가 입을 연다. 소리를 내는 행위를 시작한다. 그 언어가 눈처럼 쌓인다. 모양처럼 시가 된다. 차가운 눈 안에 손을 파묻고 동그랗게 움켜쥔다. 각자의 서로 다른 체온에 따라 적당히 녹은 눈이 손금에 묻고 흐른다. 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 아래에 쌓여 있던 눈이 오목하게 패인다. 시의 모양이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상상할 수 없는 소리가 쌓이는 도시를 상상했다. 그 도시에서는 검은 머리와 푸른 눈*을 한 자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오직 그 만이 살고 있던 도시에서 처음으로 불을 켜고 밖으로 나온 자가 되고 싶었다. 깊게 쌓인 눈에 함부로 맨발을 쑤셔박고 걷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잠든 자들을 깨운다. 목덜미에 가는 눈송이들을 잔뜩 묻힌 채로 나를 함께 밖으로 나온 오목한 손의 자에게 속삭인다. 

 

올해 첫 눈이야.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리나, 멀리서 에우리디케가-오르페우스에게, 시인들 1, 나무들 1, 사하라, 막을 보내다. 

박시하, 여기서 나의 도덕, 히로시마 내 사랑, 디어 장폴 사르트르, 시인의 불확실성으로 답하다. 

 

안나, 박시하가 받은 시를 러시아어로 말하다.

최리외, 마리나가 보낸 시를 한국어로 말하다. 

 

승주연, 받고 보내는 사이에 있다. 

이유운, 받고 보내는 바깥에 있다. 

 

이화선, 보내는 자리에서 촬영하다.

김지혜, 받는 자리에서 찍다. 

 

 

 

 

 

 

 

 

시대의 사랑 제작 

 

 

 

 

본 콘텐츠는 아르코 문화 예술위원회의 2021년 온라인 미디어 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